영화 '파이터' 임성미, "복싱 훈련은 자신과의 대화...정화되는 기분 들었죠"

임재훈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5 15: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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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미(사진: 인디스토리)

 

복싱을 통해 자신의 삶과 처음 직면해 비로소 삶의 동력을 얻게 된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파이터'의 주연 배우 임성미를 최근 홍대 부근 카페에서 만나 영화와 영화의 소재가 된 스포츠 '복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임성미는 극중 학창 시절 가족과 생이별 하는 아픔을 가슴 속에 품고 남한 땅을 밟은 이후 자신을 둘러싼 팍팍한 현실을 힘겹게 마주하다 복싱을 통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는 탈북 여성 '진아'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영화의 특성상 임성미는 복싱을 익혀야 했고, 약 한 달간 하루 2시간의 공식적인 연습 시간에 더해 수 많은 시간을 복싱에 매달리는 선수 못지 않은 수련 과정을 거쳐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영화 예고편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임성미의 섀도우 복싱이나 시사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움직임이나 복싱 동작은 '그냥 선수'였다. 그의 복싱 장면만 놓고 보면 이 영화가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실제 여자 복싱 국가대표 언저리까지 갔었던 배우 이시영의 모습보다 오히려 현실감 있는 복싱 선수의 모습이었다.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북한 주민 특유의 말투와 억양,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윤재호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탈북민 특유의 캐릭터까지...임성미의 연기 역시 '그냥 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현실감을 확보하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임성미에게 '올해의 배우상'을 안기고 언론과 평단, 관객들이 이견이 거의 없이 그에 대해 호평을 쏟아낸 이유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를 만나 우선 물어보고 싶었던 점은 복싱을 수련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였다.

"(복싱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을 수는 없었는데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한 여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였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되게 귀한 시나리오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잘 해내고 싶었죠"

고교시절 학교 연극반에서 연기를 처음 접하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신체훈련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연기 외적으로 신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파이터'에 도전하도록 만든 이유가 됐다는 것이 임성미의 설명이었다.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임성미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다큐멘터리 가운데 한 편을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버지가 관장님이시고 딸이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어린 딸이었어요. 아버지가 집에서는 이렇게 되게 그냥 노멀하고 자상하신데 복싱장만 가면 딸을 정말 엄하게 엄격하게 코칭을 하시더라고요. 의지가 약하거나 혹은 주눅이 들거나 하면 안 해 버리거나 포기했을 텐데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할수록 눈에서 불이 막 이글이글 하면서...이제와 생각하면 그런게 승부욕이 아닐까. 좀 의지라고 해야 할까. '내가 뛰어넘어야겠다고 하는 의지의 눈빛을 아주 인상깊게 봐서 '진아 연기할 때 저런 눈빛이 나오면 참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실제 영화 촬영에서 임성미가 인상 깊게 봤다는 그 소녀 복서의 눈빛은 연기로 잘 표현이 됐을까?

"그런 걸 생각하고 할 수 있을 만한 찰나가 없었어요(웃음). 복싱장에서는, 진짜 복싱하는 장면은 어떠한 연기적인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고 내가 해야 하는 그 몫만 생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눈빛이 나왔던 것 같아요."

사전에 몸 동작이나 펀치를 교환하는 합을 맞추고 연기를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진짜 복싱'을 해야 하는 장면도 있었다는 것이 임성미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몇 년 동안 선수 훈련을 받으신 분과 스파링을 해야 하는 신이 있었어요. 진짜 무섭더라고요.(웃음)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때릴 만한 그런 재간은 안되니까...어떻게 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했는데 그런 걸 카메라가 잘 포착을 해준 것 같아요."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어차피 배운 복싱인데 실제로 해야 하는 장면에서 실력을 발휘해 봤어도 괜찮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 임성미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걸 '엄두'라고 하잖아요.(웃음) 연기하려고 배운 복싱이랑 진짜 시합에 나가려고 훈련을 한 그 선수의 주먹이랑은 비교할 수가 없어요. 물론 진짜로 때리시지는 않겠지만, 사전에 다 합의가 됐겠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로 죽겠더라고요."

 

이렇게 엄살은 피웠지만 영화에서 임성미가 보여준 복싱 동작이나 몸놀림은 실제 선수를 방불케 했을 정도로 사실감을 가진 것이었다.

훈련량과 훈련에 임했던 자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복싱을 계속 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내 욕심을 접었다.

"(복싱을 계속 하라는 권유) 있어요. 많아요. '그냥 계속 쭉 하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감독님, 해 볼까요?' 뭐 이러고 했는데 촬영을 하면서 느꼈죠. 나는 아니라고(웃음)...이게 엄청난 훈련량이 필요하고 진짜 상상 이상으로 훈련이 돼야지 어디 나가서 (할 수 있겠더라고요)"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이처럼 임성미가 복싱을 취미생활 정도로 가볍게 보지 못할 스포츠로 인식시킨 사람은 극중 진아가 복싱 대회에 출전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실제 대회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즉석 캐스팅한 일반인 선수였다.


"그 분이 그 대회에서 아마 1등을 했을 거에요. 그분 눈빛이 진짜 '진짜 사람이 아닌데'라고 느낄 정도로 보였어요. 그래서 (그 분을 보고) '저렇게 해야지 저 정도는 돼야지 나는 아니구나' 이러면서 약간 좌절을 많이...(웃음) 실제로 선수하기에는 많이 무리가 있겠구나. 싶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성미는 복싱과의 인연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그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열려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복싱을 수련하면서 보게 된 복싱의 매력 때문이다.

"복서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복싱이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방어가 가장 첫 번째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어떻게 하면 외부의 어떤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킬 것인가가 복싱의 가장 첫 자세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저는 신사적으로 느껴졌어요"

 

영화 '파이터'는 언뜻 스포츠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휴먼 드라마다. 이 영화는 탈북 여성 진아의 삶과 그가 삶의 동력을 얻는 스포츠로 복싱을 선택했다.

극중 주인공 진아는 탈북 이후 남한에 정착해 식당에서 일을 해가며 하루하루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다 우연히 복싱 체육관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는 '세컨 잡'을 시작하게 되는데 체육관에서 복싱에 마음을 빼앗겨 선수의 길로 접어들며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가며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어간다.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극중 진아에게 복싱은 어떤 의미였을 지에 대해 임성미에게 묻자 '진아의 또 다른 자기 자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훈련 과정을 겪으면서 이걸 하면 그 순간에 진짜 힘들고 죽을 것 같지만 하고 나면 새로운 삶이 진아에게 마주할 것이다라는 그런 아주 작은 희망을 보지 않았을까요.? 진아가 이것저것 일을 많이 하지만 사실 보람된 일은 아니에요. 돈이 이제 대가로 들어오는 그런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복싱을 하면서는 그 행복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스스로가 자꾸 찾으면서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극중 탈북 여성인 진아가 아닌 배우 임성미에게 복싱이라는 스포츠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임성미는 복싱의 단순한 동작을 반복해서 몸으로 익히고 그렇게 익힌 동작들을 자유자재로 응용하고 링에서 보여주기까지 걸리는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화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복싱이 대결을 위한 스포츠지만 사실 그 훈련은 자기 자신이랑 계속 대화하는 듯한 훈련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고 나면 개운한 감을 느끼는 걸 넘어서서 스스로 좀 정화되는 기분이 들어요. 단순한 동작인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랑 마주하게 하면서 밀착시키는 그런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영화 '파이터' 스틸컷(사진: 인디스토리)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선수 못지 않은 훈련을 소화하고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갖게된 임성미만의 '복싱론'이다. 복싱에 대한 예찬이 아닌 담담한 의미 부여였지만 울림이 있는 평가였다.


임성미는 2009년 영화 '마더'를 통해 영화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뎠고, 그 동안 여러 영화에서 조연이나 단역으로서 출연했지만 장편 극영화의 '원톱' 주연으로서 영화 전체를 끌고가는 역할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배우로서 한 동안 든기 어려운 호평 세례를 받으며 세계적인 영화제인 부상국제영화제를 통해 '올해의 배우'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제 막 대중 배우로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배우 입장에서 부담감도 있을 법했다. 이에 대해 임성미는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를 받았다눈 생각도 아니지만 엄청 부담스럽지도 않다고 했다.

"사실 이런 연기를 하는 거나 영화를 만드는 거나 하는 것들이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사실 의미가 없잖아요. 그게 호평이든 혹평이든 누군가 봐줘야지 그게 의미가 생겨나는 건데 (저를) 그렇게 봐주셨다는 거는 정말 저로서는 굉장히 감사해야 할 일이죠. 그걸 생각하고서 연기를 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비쳐졌다는 것, 그리고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저한테는 좀 선물 같은 느낌이에요"

 

지난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동시에 거머쥐고,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21) 제너레이션(Generation) 부문 14플러스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 받은 '파이터'는 오는 18일 국내 상영관에서 공식 개봉돼 관객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 임성미(사진: 인디스토리)

"엄청난 실감은 사실은 솔직히 들지는 않아요. 저도 처음이고 또 이게 너무 시국(코로나19)이 너무 조용한 시국에 이제 개봉을 준비하다 보니까조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그래서 일단은 차분하게 개봉을 기다려보자는 마음을 갖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제 첫 주연 장편작이어서 그거에 대한 책임감 혹은 이 작품이 잘 돼야 감독님 중심으로 모인 다른 동료 배우나 스태프들이 밖에 나가서 활동하시기에 좀 활발하게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임성미는 '파이터'를 감상하는 관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영화에 접근해 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파이터'는 탈북민을 소재로 하고 복싱을 소재로 한, 어떻게 보면 한정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만한 영화이기는 한데요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이기도 해요. 보는 사람들을 위주로 생각을 많이 하고 만든 영화에요. 시선을 열고 들어가셔서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뭔가 소진된 기분 말고 충전된 기분을 갖고 극장 밖을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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