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여성 스포츠] '여성 감독'이라는 이름을 향한 편견의 시선들

최지현 / 기사작성 : 2019-06-19 16: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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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최하위였던 흥국생명이 3월 27일 ‘도드람 2018-2019 V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1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은 또 하나의 화려한 역사가 되었고, 새로운 기록이 됐다. 

 

▲박미희 감독(사진; 흥국생명)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이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이끈 국내 4대 프로스포츠(축구, 농구, 야구, 배구) 사상 첫 여성감독이라는 점이다.

 

이는 2014-2015시즌 부임 이후 5년 만에 이룬 업적이다. 2년 전 정규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나 당시 챔피언 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우승컵을 내어주며 통합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두 시즌 만에 흥국생명을 기어코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말았다. 

남녀를 떠나 지도자로서 최고의 성과를 냈지만 주변의 평가나 언론 보도는 '여성'에 방점이 찍히기 일쑤였다. 흥국생명 감독 부임 당시 ‘유리천장’을 깬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했던 연장 선상에서 그의 성과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유리천장’은 여성이 조직 내의 일정 서열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남녀 나누어 경쟁하는 선수들보다는 남녀 구분없이 활동하는 스포츠 행정가나 지도자 분야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역대 위원장과 회장들이 모두 남자였고,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자 팀을 지도하는 남성 지도자들은 많은 반면, 남자 팀을 지도하는 여성 지도자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에서 전현직 여성 지도자는 박 감독을 포함해 5명뿐이다.

여자배구에서는 2010년 GS칼텍스를 맡은 조혜정 전 감독이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1호 여성감독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던 그는 4승 20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한 시즌만에 경질됐다.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은 2017년 사령탑에 올라 박미희 감독과 함께 명실상부한 여자배구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여자농구에서는 현역 은퇴 후 200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여자농구팀을 우승까지 이끌며 지도자 경력을 쌓은 이옥자 전 감독이 최초다. 이 전 감독은 2012년 당시 시즌 전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은 KDB생명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정규시즌 13승22패로 팀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 전 감독은 팀의 우승을 위해 시즌 후반 지휘권을 이문규 코치에게 넘기는 수모를 감내했지만 결국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성적부진을 이유로 사퇴했다.

유영주 감독은 오는 24일 창단식을 앞둔 BNK의 사령탑을 맡았다. 유 감독은 여자프로농구 출범 이후 2002년 KB국민은행에서 감독대행을 맡았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KDB생명에서 코치를 지냈다. 여기에 지난 시즌까지 신한은행에서 선수들을 지도했던 최윤아 코치와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우리은행에서 은퇴한 국가대표 출신 센터 양지희가 코치를 맡았다.

감독과 코치를 모두 여성으로 구성한 것은 BNK가 역대 최초다. 매서운 여풍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공교롭게도 BNK의 전신은 KDB생명이다.

여자농구가 프로화 되기 16년 전인 1982년 농구의 전설 박신자 감독이 신용보증기금의 창단감독을 맡아 첫 여성감독 1호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박미희 감독은 우승 직후 여러 인터뷰에서 "남자들이 감독에서 내려오면 그냥 바뀌는 거고, 여자 감독이 바뀌면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선배 감독들도 저처럼 많은 시간을 받았더라면 달랐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리그는 아니지만 장기간 자신을 믿어준 팀에게 우승으로 화답한 여성 감독도 있다.

현역 시절 아시아최초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우생순’의 주인공 임오경 감독 역시 핸드볼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2008년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창단 때부터 감독으로 함께한 그는 8년 만에 핸드볼코리아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임 감독은 구기종목 최초 우승한 여성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밖에도 여자실업축구 WK 리그 보은 상무 이미연 감독은 보은 상무 전신인 부산 상무 창단하던 2007년 코치로 시작해 2008년부터 지금까지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고 있다. 이 감독은 WK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감독이다.

이들의 활약은 남성 감독들보다 더욱 기사거리가 된다. 

 

남성 감독의 우승 후 인터뷰에서는 “남성 감독이라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하는 질문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여성감독의 인터뷰에서는 “여성감독이라 어려움은 없었나요?” 하는 질문이 꼭 존재했다.

남성 감독들에 비해 더욱 엄격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박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결과가 나와도 여성 지도자에게는 ‘카리스마가 없어서’ ‘선수를 장악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유리천장을 깼다는 성과와 동시에 그 말이 또 한 번 여성이라는 틀에 가두는 것 아닐까 우려도 있다.

박 감독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여성 감독이라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똑같은 지도자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지도자로 선수들을 이끄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처음이니까 그럴 것이다. 앞으로 여자감독이 많이 생기면 안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역 시절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올스타로 여섯 번이나 뽑힌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난 해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팀의 수석 부감독에 선임되면서 화제가 된 베키 해먼(미국)은 “언젠가는 여성이 남자팀 감독·코치로 일하는 게 뉴스가 아닌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상황을 돌아보면 해먼의 말은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지도자들의 성과가 성과 그 자체로 평가 받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요소에 가려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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